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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할머니의 죽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것처럼 느낀 것은 그만큼 내가 할머니를 잊고 살았던 까닭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97세의 연세가 말해준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면서 가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지셨다가, 갑자기 기력을 잃기도 하셨단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아주 어릴 때 할머니와 지냈다지만, 너무 어릴 때라서 별로 기억이 없다. 그 때 부산에서 있었다는데, 동네에 대한 기억도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은 것에 기초한다. 할머니가 큰 병없이 그리 오랫동안 살아계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운동과 식사량이다. 잠시 우리 집에 머무르실 때조차 할머니는 산책을 다니셨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아주 잘 드셨다. 엄마가 얘기하는 다른 비결은 고민과 걱정이 별로 없으시다는 것. 걱정이 별로 없다는 것은 스트레스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문제는 걱정해야할 것에도 무신경했다는 점이라는 엄마의 설명. 

아무튼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어떻게 말해야 될까? 그냥 죽음이라고 제목에 썼지만, 뭐라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위키를 뒤져봤다.

    • 붕어(崩御) - 황제나 황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 훙서(薨逝) - 왕, 왕비 또는 황태자, 황태자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 승하(昇遐) - 군주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 서거(逝去) - 자신보다 높은 사람(예: 대통령, 국무총리)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예: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 선종(善終) - 천주교회에서 신자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다'라는 뜻을 가진 선생복종(善生福終)에서 유래하였다. (예:김수환 추기경 선종)
    • 입적(入寂) - 불교에서 승려(비구, 비구니)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예:법정 입적)
    • 소천(召天) -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이며, 개신교회에서 신자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 열반(涅槃) - 불교에서 부처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 순국(殉國) -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예:윤봉길 의사 순국)
    • 순교(殉敎) - 자신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예:이차돈 순교)
    • 순직(殉職) - 자신의 직책을 다하다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 임종(臨終) - 자신의 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작고(作故)라고도 불린다.
    • 별세(別世) - 일반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인다.
    • 타계(他界) -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이자 귀인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 사망(死亡) - 죽음을 뜻하는 단어로 가장 많이 쓰인다.
    • 졸(卒)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의 격식을 갖춰 이르는 말이다. 몰(沒)이라 하기도 한다.
    • 폐(廢) - 고꾸라져 죽는다는 뜻이다.
    • 전사(戰死) - 전장에서 싸우다 죽음. 전몰. 전망. 
이렇게나 많다니... 사망은 너무 감정이 배제된 것 같고, 할머니는 남묘호랑계교 (철자가 맞는지 모르겠다)를 믿었으니 소천도 아닐 것이고. 별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할머니의 별세. 솔직히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 사셨고, 병이나 치매로 힘들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라서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죽음은 호상이라고 봐야할 듯 싶다. 아마 할머니는 사후세계에서도 편하게 보내실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의 죽음은 어떻게 불려질까? 소천, 작고, 별세, 사망 중의 하나겠지.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법. 어차피 닥칠 일에 대해 특별히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곧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찾아봤다.
    •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
    •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카뮈 
    •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니체 
    •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헤세 
    • 사는 것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공자
    • 사람이 아는 바는 모르는 것보다 아주 적으며, 사는 시간은 살지 않는 시간에 비교가 안될 만큼 아주 짧다. 이 지극히 작은 존재가 지극히 큰 범위의 것을 다 알려고 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 도를 깨닫지 못한다. -장자
    • 항상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다. -디오게네스
    • 원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진다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안 이루어진다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고 알면, 이루어지면 이루어지는 대로 안 이루어지면 안 이루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인생을 가볍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를 아는 걸 바로 깨달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 인생을 괴롭다 여기며 사는 겁니다. 지금 인생이 괴로우니 자꾸 죽은 뒤를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 . 다만 찰나에 깨어 있을 뿐입니다. 찰나 뒤도 생각할 필요 없고, 찰나 전 지나가 버린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나간 것을 자꾸 생각하면 괴로움이 생기고,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근심 걱정이 생깁니다. 지금에 깨어 있으면 괴로움도 없고 근심 걱정도 없습니다. -법륜
공자, 장자, 법륜의 생각이 비슷한 게 재미있다. 이 세상도 잘 모르면서 왜 그다지도 죽음 이후를 알려하는가라고 질책하는 듯 하다. 법륜스님 말씀이 마음에 꽂힌다. "다만 찰나에 깨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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