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함석헌
2024. 11. 20. 08:15ㆍQuote
정신은 반발하는 것이다. 버티고 서는 것, 머리를 들고 일어서는 것, 운명에 대해 대드는 것이 정신이다. 뜻을 찾는 것이 정신이다. 그저 나도 살겠다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세우는 뜻이 있어야 한다. 내가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뜻을 찾으면 뜻이 나를 살려주고 나를 위대하게 한다.
역사를 지나간 일의 결과라고 누가 그러나? 아니다. 역사는 장차 올 것 때문에 있는 것이다. 始가 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이야말로 처음부터 있어 시를 결정하느니라. 그러므로 뜻이다. 고구려를 망하게 만든 것은 우리다. 고구려가 망하였느냐? 아니다. 동명성왕은 저 할 것을 하였고, 광개토왕은 저 할 것을 하였고, 을지문덕도 연개소문, 남건, 남생도 다 저 할 것을 하고 갔느니라. 고구려가 망하는 것은 오늘날 너와 나에게 달렸다. 우리가 버리면 동명도 단군도 개죽음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살리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 말하기를 그만두자.
우리는 위에서 이성계가 이기고 최영이 패할 때에, 이상주의가 죽고 현실주의가 이겼다고 하였지만, 이상주의의 귀함은 반드시 그 이상이 실현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별이 반드시 붙잡혀서 길 인도가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이상도 반드시 거기 도달이 되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별이기 때문에 영원히 길잡이가 되는 것이요, 힘써도 힘써도 그대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요, 힘써도 힘써도 그대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다. 별이 주는 것은 방향인데, 확실한 방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높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도 인생에 방향을 주는 것뿐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될수록 높고 멀어야 한다. 현실의 낮고 가까운 것보다 이상의 높고 먼 것을 따르려는 그 정신, 그 기개가 민족을 살린다. 인생은 정신에 살고 기개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