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철학

2014. 10. 2. 15:34일상

나는 전형적인 공돌이였다. 그저 수학과 물리가 좋아서 공대를 들어갔다. 대학4학년 때 경제학개론을 듣고 한 번 공부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정치나 철학은 여전히 나와는 관계없는 분야였었다. 세상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지금 나는 직함만 엔지니어일 뿐 특허 업무를 하고 있고, 지금은 Rhetoric을 머나 먼 이국 땅에서 공부하고 있다. Rhetoric과정에서 몇몇 철학자를 접하고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니체의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매력적이다. 니체라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나, 그의 철학과 관련된 강의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 보고 있다. 니체가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 그의 철학이 얼마나 기념비적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니체의 핵심사상, "힘에의 의지", "초인", "영원회귀", "주인의 도덕" 등 키워드로 요약이 가능하지만, 아직 정확히 개념을 잡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니체의 핵심 주장은 홀로 서라는 것이다. 창조의 정신으로 살아가라고 힘주어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예의 도덕이 아닌 주인의 도덕에 의해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신에 의지하여 성경이 전하는 계명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은 노예의 도덕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억제하고 나아가 창조의 힘을 감소시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고 외친 이유이다. 

주인의 정신은 아이의 정신이다. 차라투스투라는 낙타, 사자, 아이라는 세 가지 정신의 변화에 대하여 얘기한다. 낙타는 노예의 정신을 대표한다. 무거운 짐을 나르도록 요구받지만 불평없이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간다. 인내심 많은 낙타는 한번도 반항하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지 못한다. 하루종일 자본의 힘에 의해 시키는 일을 묵묵히 버티면서 해 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다음은 사자의 정신이다. 사자는 자유를 쟁취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사자는 등에 짐을 싣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자는 원하는 대로 행한다. 죽을 지언정 적에게 굴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사자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의 상태, 사자는 그 자유를 획득하였다. 의무 앞에서도 신성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이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더해 아이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요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창조를 위해서는 일이 아닌 놀이여야 한다. 아이는 방금 만들었던 것도 망각하고, 끊임없이 만들고 부수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웃으며 다가간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의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더 이상 창조는 신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철학자 강신주, 스님 법륜과 같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홀로 서기와 니체의 철학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철학자 강신주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주인정신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로 살 것, 자기의 감정에 충실할 것. 법륜 스님 역시 자기 스스로 밥벌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니체가 120여 년 전에 힘주어 설파한 주인의 도덕과 다름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내 자신에게 심각하게 던져본 적이 없던 거 같다. 철학이 삶을 낯설게 보게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철학적 사유를 잠언 형식으로 서술된 책이다. 상당히 문학적이라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견 성경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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