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인간

2014. 10. 19. 08:52일상

이것은 최동석 박사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 요약임.

최동석 박사를 알게 된 것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이라는 제목의 벙커1특강을 통해서이다. 이 분은 개인적으로 인사조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경영학자이다. 경영학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다른 사물과 동, 식물과 비교하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답변으로는 지능이 높아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나 단순히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답변이다. 수 천년이 되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자 노력했으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해석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18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즉, essentia가 아닌 existentia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존이라 번역한다. 즉,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존재와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책상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그 위에 걸터 앉을 때 의자로 존재하기도 하고, 내가 그 위에 서서 춤을 출 때는 무대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확히 말해서 인간이)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혹은 내가 목적을 설정하기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하는 사물과 달리 실재로 존재한다. 인간은 인간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을 분해, 분석해 봐야 인간의 본질을 알 수는 없다. 오장육부의 조합, 더 들어가 원자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언제부터 실존으로서 인간이 나타나는 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실존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정의는 이후에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실존주의를 낳았다. 사르트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강연에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록으로 출판됨) 유명한 말을 남긴다. "Existence precedes essence."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그 무언가를 실존이라 부른다. 인간이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물의 본질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실존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의식, 영혼, 무의식 등으로 개념화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같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실존이라는 용어 내지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이라는 용어가 적절해 보인다.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 현대 경영학, 특히 미국의 주류 경영학을 비판하면서 최동석 박사가 강조하는 것은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조직 내의 인간을 앵벌이로 바라보는 오늘날 경영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예전에 강신주 박사가 "인재"라는 용어를 비판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인간을 하나의 재료로 전락시키는 인재라는 용어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표시했다. 인간은 다른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문학은 인간 그 자체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이다. 어쩌면 인문학적 관점에서 "신"도 필요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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