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결정을 보며

2014. 12. 25. 17:06일상

정치적 보복이라는 생각부터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이정희가 내뱉은 말이 떠올라서다.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 정확한 워딩은 모르겠지만, 흔들림없는 그녀의 눈빛에서 독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마다 대선후보 토론에서 그녀가 던진 폭탄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친한 회사 동기 녀석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흥분했고, 우리 오마니조차 "독한 년"이라며 후보 자격도 없다고 쏘아 붙이셨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통쾌했다. 그녀가 던진 말들은 실체적 진실이었고, 그녀의 독기어린 말투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녀가 던진 말들은 전략상 좋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또 다른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워 보였으나, 이 사건을 그냥 넘길 거 같지 않다는 예감은 들었다. 그래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녀 뿐 아니라 그녀의 조직까지 없애버릴 줄은...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너무도 훌륭하다. 외국에서 유학한 학자들도 그렇게 느끼고, 심지어 노엄 촘스키와 같은 진보적 지식인조차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잘 살게 되었다고 뿌듯하게 느끼기에는 우리나라가 많이 부끄럽다. 사실 나의 성공과 내 앞가림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 그만이지,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화되든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특히나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대도 아니고, 이렇게 국경이 없는 듯 글로벌해진 세상인데... 그러나 모르면 몰랐지 일단 알게 되면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로 인해 나의 삶이 심각한 영향을 받음을 알게 된 이상, 정치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뭐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훌륭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에 1년여 살면서 미국이 꼭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건 느꼈지만, 그래도 원칙이 지켜지고, 그래서 사람들도 그 원칙을 지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정의로워서라기 보다는 법, 시스템이 사람들을 공정하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신호위반이라도 가혹하리만치 무거운 벌금을 매긴다. 걸려보면 조심 안 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많이 좋아지리라 본다. 문제는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치인에 있다.

사실 정치인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른다. 정치인에 대한 언론 보도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이미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을 통해 피상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이정희의 이미지는 많이 왜곡되어 있는 듯 하다. 말 잘하고 똑똑하긴 하지만, 노동운동에 앞장서는 열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거기에 북한을 공격하기보다 옹호하는 종북이미지까지 덧칠되어 있다. 예전 80년대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치하면 사람들은 노조와 연결시키게 되고, 이 모든 것이 부정적이다. 운동권, 노조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긴다. 늘상 접하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러한 이미지가 세뇌되게 된 것이다. 운동권이 없었다면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을까? 노조가 없다면 우리의 임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우리의 노동력은 착취당할 것이다. 노동자, 농민을 대표하겠다던 이정희에 대해 나는 그 진정성을 믿는다. 사람은 그 사람이 행한 일,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말해주는 법이다. 대학 때 미군기지 여성들을 접하면서 사회에 눈을 떴고, 변호사가 되어서는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약자 편에 서 왔다. 법과 정치는 약자 편에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약자 편에 서야만 강자 사이에 균형이 맞춰지고 바로 그것이 공정한 사회이다. 그런 면에서 이정희에게는 그러한 정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강자가 군림하는 야만적인 사회임을 확실히 느낀다. 특히 강자들은 서로 똘똘 뭉쳐 온갖 교묘하고 비겁한 술수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약자들은 뭉치기는 커녕 도움의 손길을 뻗지도 않는다. 통진당 해산에 대해서 이정희 또는 통진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을 보지 못했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 약자를 위한 정치를 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건 더 어려워졌다. 그러한 철학이 있는 정치세력은 미약하나마 통진당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꿈틀거릴 때 밟아 없애는 그녀와 새누리의 야만성은 무서울 정도다. 다시 힘을 냈으면 좋겠다.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이 집권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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