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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것처럼 느낀 것은 그만큼 내가 할머니를 잊고 살았던 까닭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97세의 연세가 말해준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면서 가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지셨다가, 갑자기 기력을 잃기도 하셨단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아주 어릴 때 할머니와 지냈다지만, 너무 어릴 때라서 별로 기억이 없다. 그 때 부산에서 있었다는데, 동네에 대한 기억도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은 것에 기초한다. 할머니가 큰 병없이 그리 오랫동안 살아계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운동과 식사량이다. 잠시 우리 집에 머무르실 때조차 할머니는 산책을 다니셨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아주 잘 드셨다. 엄마..
2014.10.09 -
니체의 철학
나는 전형적인 공돌이였다. 그저 수학과 물리가 좋아서 공대를 들어갔다. 대학4학년 때 경제학개론을 듣고 한 번 공부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정치나 철학은 여전히 나와는 관계없는 분야였었다. 세상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지금 나는 직함만 엔지니어일 뿐 특허 업무를 하고 있고, 지금은 Rhetoric을 머나 먼 이국 땅에서 공부하고 있다. Rhetoric과정에서 몇몇 철학자를 접하고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니체의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매력적이다. 니체라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나, 그의 철학과 관련된 강의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 보고 있다. 니체가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 그의 철학이 얼마나 기념비적인지..
2014.10.02 -
한공주
오랜만에 괜찮은 리얼리티 강한 영화를 발견했다. 거기다가 천우희라는 매력적인 젊은 여배우를 알게 되었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고아성의 친구 역으로 나왔던 그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주연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포스터를 보니 상도 많이 받았다. 한공주라는 이름이 왠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공주라는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불우한 환경에다 포스터 속에서 보이는 눈물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과 함께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음이 분명하다. 어린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일. 그러나, 지켜주는 어른은 한 명도 없다. 엄마도, 아빠도, 주변 어른들도. 물론, 학교 선생님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작은 동정일 뿐 공주의 ..
2014.10.01 -
해무
김윤석과 봉준호, 두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생긴다. 몰입도가 상당하다. 다만, 살아남은 동식과 홍매가 그저 남남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결말은 조금 쓸쓸하다. 배우들의 연기 면면이 모두 리얼하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이 잔인하게 변하는 과정은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밀항하고자 배에 숨었던 조선족이 가스 질식으로 몰살한 이후 갑자기 잔인하게 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거북한 면이 있다. 굳이 "미스트"와 비교하자면, 인간 심리의 변화 과정이 너무 급작스레 이뤄지는 점에서 아쉽다. 늘 그렇듯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은 동식과 홍매의 사랑이다. 미쳐가는 인간들 속에서도 동식의 사랑이 홍매의 생명을 구한다. 역시 사랑의 힘은 이토록 강한 것인..
2014.09.24 -
경제민주화
어제 JTBC 뉴스에서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봤다.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삼성과 같은 재벌걔혁 내지 재벌규제에 대한 관점이 남달랐다. 무식한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것, 내가 이해했던 것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재벌규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논점은 주식 소유비율이 낮은 총수일가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교수 얘기는 거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벌들을 국민의 기업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1원 1표 즉, 가지고 있는 주식만큼 권한이 주어지므로 이를 민주주의 원칙인 1인 1표의 정신을 가미하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기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배구조를 원칙대로 개선하자는 논의는 다분히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을 지..
2014.08.13 -
20140811 Movie day
어제는 하루종일 영화만 봤다. 당장 해야할 게 없는 것이 너무 좋다. 씻기도 귀찮고 먹기도 귀찮고. 미국에 오면서 오직 미국 뉴스에 미국 드라마에 미국 영화에만 묻혀서 살겠다는 말도 안되는 결심은 잊은 지 오래다.아침부터 저녁까지 '표적'으로 시작해서 '역린', '노아', 'Labor day', 이렇게 네 편의 영화를 스트레이트로 감상했다. 별점은 'Labor day', '역린', '표적', '노아' 순이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평가다. 네 편 모두 다른 이에게 추천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어제 일등을 먹은 'Labor day'에 주목하고자 한다.뭐든지 기대가 작으면 기쁨도 큰 법. 별로 기대하지 았았던 것이었을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한 감동을 선사했다. 잔잔한..
201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