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꼭 필요한 걸까?

2017. 9. 6. 10:49일상

최근 EBS 다큐프라임 "공부의 배신"을 봤다.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채널을 넘기다 대학생들이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길래 한동안 지켜봤다. 다른 얘기지만, EBS는 가성비가 최고인 방송국이 아닌가 싶다. KBS에서 엄청나게 받아 챙기는 TV  수신료 중 극히 일부만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훌륭하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참 많다. 아무튼 대학생들의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출연 대학생들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명문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른바 출신성분때문에 차별을 느끼고,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그 출신성분이라는 것이 정시냐 수시냐 기회균등전형이냐 재외국민전형이냐라던가 아니면 외고냐 과학고냐 자사고냐 아니면 그냥 일반고냐라는 것이다. 같은 대학 같은 과라 하더라도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전형을 통해 입학했는지 여부에 따라 편이 갈리고, 소외감을 느끼고, 주눅이 든다는 거다. 또한, 기분이 썩 좋지 않긴 하지만,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의견이 대부분이다. 어떤 학생은 초중고를 거치면서 이렇게 구분짓도록 세뇌를 당했다고 얘기하고, 어떤 학생은 고등학교 때까지 노력한 정도가 다른데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묶이는 것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토로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려 봤다.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 때도 특목고가 존재했고, 명문고가 존재했으며, 동문회들로 끼리끼리 모이기는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더군다나 입시제도가 지금처럼 복잡다단하지 않아 입시전형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동기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학과마다 수능성적이 차이가 나므로 성적이 높은 의대나 법대 학생들은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과 학생들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서열을 매기고, 열등하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다큐에 나왔던 학생들의 얘기를 들으면 학생 한 명 한 명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입시전형이나 출신 고등학교와 같은 아주 사소한(?) 기준에 의해 상대방을 평가하고, 열등감 혹은 우월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주위에 대학생들이 없어서 요즘 대학생들이 실제 그렇게 느끼는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다큐에서 보듯이 정말 현실이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면서 사회 생활을 하면 대학 간판이나 소위 학벌이라는 것이 크게 대단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대학에서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내 가며 배웠던 것들이 인생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물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대기업에 들어가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입사했더라도 나는 충분히 회사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학 무용론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학력이 곧 실력이 아님을 말하고자 함이다. 모든 것이 서열화됨으로써 학력이라는 잣대로만 평가받고 인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하니 내가 하는 얘기는 이상적인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먹고 사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고, 나와 타인을 구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를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객관적인 스펙을 갖추어야 하고 그것이 학벌인 것이다. 이제는 대학 간판도 부족해서 출신 고등학교, 출신 지역, 아파트 브랜드, 부모님 직업까지 구별짓고 있다. 나 이외에 모두 싸워서 이겨야할 대상이니 어찌 협력할 수 있고, 어찌 도울 수 있으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스트레스만 넘쳐날 수밖에.

근본적으로 경쟁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할 텐데, 단순히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서열화, 양극화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결국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정치를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지만말이다. 다른 무엇보다 교육의 초점이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는 교육분야에 대한 개혁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학 서열화를 없애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학창시절의 지상과제가 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취직하기 위해서, 스펙쌓기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서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최진기 강사의 의견처럼 서울대를 폐지하고 국립대를 통폐합하여 첫단추를 꿰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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