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부 매각

2017. 9. 6. 11:06일상

사업부 매각 소식이 현실로 드러났다. 4년간 몸담았고,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착잡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소속 임직원들도 갑작스런 소식에 서러움과 억울함을 느끼는 듯 하다. 올해 들어 계열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봐서 돈 안 되는 사업을 정리하는구나라고는 생각했지만, 차세대 전략분야라고 홍보하던 사업분야라서 매각 소식에 조금 놀랐다. 무엇보다 1조가 조금 넘는 헐값에 팔아치운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단순히 경쟁력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냥 사업을 접고 싶은 의지가 고위층에 강했었던 것 같다. 매각 금액을 보니 소속 임직원들은 더더욱 버림받은 느낌일 것 같다. 

과연 경쟁력이 없는 걸까? 실적 호전은 기대할 수 없는 걸까? 현재 어려운 사정은 경영층의 의사결정과 인사정책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B2B가 중요하긴 하지만, A3 제품 개발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투입한 것 아니냐하는 점이다. 라인업을 한꺼번에 갖추기보다 한 모델이라도 국내를 중심으로 B2B 영업을 확대하면서 B2B 노하우를 쌓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업부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며 낙하산으로 꽂았던 사업부장의 인사도 큰 문제였다고 본다. 각각의 제품군마다 비즈니스 특성이 상이함에도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해 왔다. 더구나 인사가 자주 있다보니 제품 특성과 사업부 업무 파악을 위해 부임 후 1~2년은 그냥 흘려 보냈을 것이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경영층으로 와서 지시를 하고, 또 설명해야하는 상황이면 일할 맛이 나겠는가? 소위 잘 나가는, 돈 잘 버는 사업부라고 하는 무선이나 VD를 볼 때, 외부 인사가 사업부장에 앉았던 적이 있나 싶다. 

잘 나가는 사업부의 DNA를 싶겠다하지만, 제품마다 특성이 다 다르다. 프린터는 철저히 아나로그 제품이다. 제품 디자인이나 기능이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는다. 휴대폰처럼 사용자와 인터랙티브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제품이 아니다. 데이터를 받아서 출력하는 철저하게 passive한 제품이다. TV는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휴대폰은 애플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면서 우리 회사는 그 흐름을 잘 탈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린터는 70년대 이후 전자사진방식이라는 시스템에서 패러다임이 바뀐 적이 없다. 좋은 품질을 위해서는 각종 부품의 수준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정밀 기계 제품이 프린터이다. 그만큼 기술의 축적이 필요하고, 개발 노하우가 필요하다. 다른 사업만큼 단 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중국을 보라. 핸드폰이나 TV처럼 프린터를 만들고 있는지... 

앞으로도 몇 년 투자해 보고 당장 돈이 벌리지 않으면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반복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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