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2024)

2025. 1. 12. 23:49영화

야쿠쇼 코지,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이다. 

덴마크의 매즈 미켈슨, 스페인의 하비에르 바르뎀, 한국에서는 안성기 정도가 되겠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쉘 위 댄스"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는데, 영화가 상당히 흥행했음에도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고, 야쿠쇼 코지에 대한 강한 인상도 남아 있지 않다.

포스터를 보면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무료한 분위기를 나타낼 듯 했으나, 영화 감독이 일본인이 아닌 독일의 거장이라고 하는 "빔 벤더스"라서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예술 영화일 듯 싶었고, 내용도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봤다.

예상대로 영화가 긴장감이나 속도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일상이 주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주인공인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씨는 동경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다.

새벽에 잠이 깨면 다다미 위의 이불을 개고, 하나 둘씩 모은 작은 화분들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고, 양치와 세수에 이어 콧수염을 정돈하며, 청소일을 하러 문을 나선다. 문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한번 쳐다 보고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서 청소도구로 가득 찬 밴을 끌고 나선다. 자신이 맡은 공공 화장실을 물 흐르듯이 능숙하게 청소를 한다. 그렇게 꼼꼼하고 청결하게 자신이 맡은 화장실을 청소한 후 퇴근해서는 작은 문고판 책을 읽으며 졸다가 안경을 벗고 잠자리에 든다.

이러한 히라야마의 일상을 영화는 반복해서 보여 준다. 

청소부라는 직업이 아닐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이와 비슷할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어진 일이 다를 뿐 나의 삶도 루틴하게 반복된다. 가족이 있는 나와 달리 히라야마씨는 혼자 살고 있으나, 항상 책을 보다가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드는 점은 나와 매우 유사하다.

히라야마씨는 왜 혼자 살게 되었는지, 원래 직업이 청소부였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동경 시내 화장실을 청소하게 되었는지 영화는 별 설명이 없다. 영화 중반 이후 조카가 가출해서 갑자기 히라야마 집에 찾아와 같이 며칠을 지내게 되고, 조카의 엄마인 히라야마씨의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러 오게 되고, 히라야마씨가 조카를 데리고 떠나는 여동생과 헤어질 때 끌어안고 우는 장면이 있지만, 히라야마씨의 가족 얘기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히라야마씨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것 이면에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히라야마씨에게 청소일이 일상의 전부는 아니다. 문고판 중고책을 사서 읽는 것 이외에 필름 카메라로 하늘에 나부끼는 나무를 찍고, 현상하여 보관한다던지, 지나다니다 발견한 식물들을 작은 화분에 담아 키운다던지, 올드팝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차로 이동 중이나 집에서 듣는다던지 자기만의 취미로 시간을 보낸다. 

나중에 혼자 살게 되면 나도 이러한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느 때와 같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청소일을 하러 운전하는 히라야마씨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상당히 긴 롱테이크 씬에서 히라야마씨는 서러움이 밀려온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보이다가 다시 옅은 미소를 보이며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도 읽혀지는 그런 복잡 미묘한 다층적 표정이다. 이어서 차창 정면으로 아침 햇살이 붉게 비취면서 영화는 끝난다.

마지막 엔딩씬은 야쿠쇼 코지라는 배우가 왜 명배우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 엔딩씬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배우는 아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그 얼굴에는 실로 다양한 표정이 들어있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주인공의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야쿠쇼 코지의 풍부한 표정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몇 가지 끄적여 본다.

동경의 공공 화장실의 디자인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일률적이지 않고, 다채로우며, 깔끔하고 심플하다)

하는 일이 다를 지언정 인간의 삶은 결국 다 같은 모습 아닌가? (직업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반복적인 일상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닌가?

10점 만점에 8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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