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

2015. 4. 19. 05:58일상

종교와 대립되는 단어는 단연 과학일 것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창조와 진화이다. 모든 종교가 창조를 언급하지는 않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깊게 파 보지는 않았으나, 양측의 논리를 살펴보면 나는 진화론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지금까지 학교라는 시스템 하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자부했지만, 새로운 사실, 새로운 생각을 접할 때마다 나의 지식은 얼마나 보잘 것이 없나라고 자조하게 된다. 뉴턴에 감탄하던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동설을 믿어왔던 예전 사람들에게 지동설이란 것도 그러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스스로의 믿음을 수정해 왔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해도 인간은 여전히 많은 것들에 무지하다. 이런 관점에서 신이 인간, 그리고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과학으로도 많은 믿음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말이다. 아직 증명되지도 않은 사실은 그냥 미지의 세계로 놔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어찌 원인없이 결과가 있을 수 있냐는, 다소 막연한 논리 내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 말씀에 있다. 즉, 창조론의 근거는 너무나 희박하다. 성경이 진리라는 전제 하에 논의를 전개하는 기독교인의 설명 또한 매우 비과학적이다. 문제는 성경 또한 인간이 서술했다는 점이다. 한편,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은 상당히 다양하고 구체적인 데이터로 뒷받침되고 있다. 물론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할 지라도 진화한다는 사실만은 팩트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 현재 인간의 지식으로는 타당한 해석이라고 본다. (물론 그게 진리라고 믿는 것도 위험하다.)

버트란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에세이에서 기독교의 논리적 허점과 그 폐해를 설득력있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론은 오직 성경과 그것이 진리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나는 종교가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로 인해 과학이 종교를 대체해야 한다는 러셀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종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하기도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하며,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보다 일단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 해답의 대안으로 철학이 있다. 철학이 종교보다 더 많은 자유를 인간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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