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조영래

2017. 9. 6. 12:27일상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고생시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하이틴 스타 중의 한명이 주인공이었는데, 그가 누구였는지 이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노동운동가로 젊은 나이에 분신하여 목숨을 잃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일대기 "전태일 평전"을 지난 겨울 휴가 때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는 주인공 전태일 때문이 아닌 저자 조영래때문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80년대 독재정권 하의 엄혹한 시절에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다. 부천서성고문사건의 권인숙양을 변호하여 파렴치한 경찰의 치부를 세상에 알린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 변호사협회 건물에도 조영래 변호사의 흉상이 있고, 많은 변호사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자신의 출세와 입신에 올인하는 너무도 많은 엘리트 법조인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조영래 변호사의 삶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 뿐 아니라 학생운동 이력과 인권변호사 활동, 거기에 젊은 나이에 타계한 안타까움까지 이런 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텐데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도 없는 것 같다. 전태일 분신사건을 접하고, 이름을 숨긴 채 수배생활 중 틈틈이 저술했던 책이 바로 이 전태일 평전이라 해서 꼭 한번 읽고 싶었다.

일찍이 산업혁명의 영국에서는 장시간의 아동노동이 사회문제가 되었고, 자본주의의 노동자 착취를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집필했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1970년대 한국에서도 여지없이 벌어졌다. 닭장 속에 갇혀서 끊임없이 달걀을 양산하는 닭처럼 전태일이 몸담고 있는 청계천 평화시장에는 그렇게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는 젊은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근로기준법을 접한 전태일은 이것이 엄연히 불법이고, 마땅히 시정되어야 함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하고 조직도 결성해 투쟁해 보았지만,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그냥 가난이 숙명이라고 묵묵히 받아들이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재단사로서 돈벌이를 감내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햇빛 한번 못 보고 하루 16시간을 노동하는 어린 여공들을 보고서는 도저히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외치며 분신함으로써 불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전태일은 죽었다. 전태일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렇게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 조영래는 전태일의 일기와 수기를 참조하여 자세하게 묘사한다. 조영래는 전태일의 삶을 접하고 같은 또래로서 너무도 다르게 살아갈 수 없는 사회현실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사회개혁가이자 인권변호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전태일이 스물 둘의 아름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1970년과 비교해서 우리 사회는 많이 좋아졌을까? 그러한 노동환경은 다시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그에 따라 벌어지는 소득의 격차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겠다. 자본에 의해 노동자가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배분하는 공동체 건설은 정말 북유럽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나라 얘기란 말인가. 지금의 나는 대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매우 풍족한 보수를 받고 있으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금의 심각한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어서 빨리 개선되기 바란다. 전태일같은 투쟁가가 나서지 않더라도 노동자를 대표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서 우리 자녀가 사는 세상에는 불평등이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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